재난상황을 스스로 만든 정부는 거짓말로 진실을 호도하지 말고, 사태 해결을 위해 진실된 자세로 나서기를 바란다. 

오늘 정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서 국무총리 주재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보건의료재난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비대면 진료를 전면 시행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과 응급환자 진료에 역량을 집중하고 중등증 이하 환자는 지역의 2차 병원, 경증 외래환자는 의원급에서 각각 진료토록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의사들은 정부의 이러한 발표 내용을 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간신히 유지되던 현 의료 시스템을 일순간 망가뜨리는 포퓰리즘 정책을 강행한 것은 정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부의 무리한 정책 강행으로 인해 전공의들이 희망을 잃고 병원을 사직하면서 의업을 포기하였기에 지금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누가 봐도 무리하게 포퓰리즘 정책을 강행하여 평온하던 의료 시스템을 재난 상황으로 몰아간 것은 정부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재난상황을 스스로 만들고는 이 재난을 수습하겠다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는 코메디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무리한 정책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일어났기에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부입니다. 

정부는 더 이상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의료 현장에서 피땀 흘리고 있는 의사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시고, 잘못된 정책을 강행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상황을 재난으로 정의하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정말 실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현재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중증 및 응급환자를 중점적으로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증 및 응급 질환에는 적용조차 불가능한 비대면 진료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말입니까? 중증 및 응급 환자들을 비대면으로 진료해 줄 의사는 당연히 없을 것이지만, 이 조치는 그동안 1,2차 의료기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 받으며 정기적으로 대면 진료 후 처방을 받는 만성질환자들도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게 만들어, 만성질환자들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은 중증과 응급환자 진료에 역량을 집중하고 중등증 이하 환자는 지역의 2차 병원, 경증 외래환자는 의원을 이용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대책으로 내세웠습니다. 이것이 대책이 될 수 있다면, 정부는 지금까지 이렇게 당연한 일조차 지켜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망가뜨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박민수 차관은 의료법 제15조를 언급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으니 업무개시명령은 적법한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공의들은 진료를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그만 둔 것입니다. 진료 거부라는 것은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가 진료를 할 수 있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의료 기관에서 종사하지도 않는 의사가 어떻게 진료 거부를 할 수 있습니까? 의료인은 의료법에 의해 의료 기관 이외의 장소에서는 의료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박민수 차관은 사직한 전공의들에게 불법을 교사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박민수 차관은 자꾸 거짓말로 국민들을 기망하고 있습니다. 박민수 차관은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건수가 6113건으로 의사 업무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므로 이것이 의사가 부족한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사의 업무량이 세계 최고가 된 이유를 정녕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 의사들이 OECD 평균의 3배 이상 일하는 이유는, 원가의 70% 수준이자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저수가를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낮은 수가는 의료기관의 문턱을 낮추어 국민들이 더 많이 의료를 이용하게 유도하고 있는 원인 이기도 합니다. 만약 수가는 이렇게 낮게 묶어두고 의사 수만 늘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사들은 똑같이 생존을 위해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고, 늘어난 의사로 인해 이미 세계 최고인 의료접근성은 더욱 높아져 국민들은 의료를 더욱 많이 이용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의료비는 재난적 폭탄을 맞을 것이 자명합니다. 이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고, 의사들은 이러한 상식에 기반해서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원하는 의료 시스템이 OECD 평균에 맞추는 것이라면, 국민들께 OECD 평균 수준의 의료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바로 대한민국 의료를 OECD 평균으로 수렴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수술 대기시간, 전문의 진료 대기시간, 치료가능 사망률, 의료 수가 등 대한민국이 OECD 평균보다 월등히 우수한 각종 보건의료 지표들도 OECD 평균 수준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국민들이 동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만약 국민 동의도 받지 않고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박민수 차관은 전일 의협 비대위에서 의사는 일반 직장인과 다르게 은퇴 연령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고령의 나이에도 대부분 은퇴하지 않고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2022년 기준 70세 이상 고령 의사 8,485명의 대부분인 78.5%가 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근무 중에 있고, 중증환자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근무비율은 18.5%에 불과하다고 밝히며, 마치 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필요한 의사가 아닌 것처럼 폄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직접 70세 이상 고령 의사들의 대부분이 은퇴를 하지 않고 열심히 의료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세상에 어느 직종이 70이 넘는 고령에도 78.5%가 일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담당하는 일은 상급종합병원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의원, 요양병원, 중소병원 등 모든 곳에서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요양병원은 중증 환자들이 가장 많은 의료기관 중 하나입니다. 

오늘 차관의 발언은 1,2,3차로 이루어진 의료전달체계가 마치 의료기관의 서열을 나누는 기준인 것 인양 오해하게 만드는 황당한 발언이고, 의료 시스템 운용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 차관으로서 최소한의 지식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부끄러운 발언입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강하게 압박해도 더 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업을 포기하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미 정부는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의사들은 지금 현 상태 그대로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되면, 자유와 인권을 빼앗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희망을 잃은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에 정부는 진실을 호도하지 마시고, 재난상황을 스스로 만든 책임을 지고 억압이 아닌 대화를 시작하는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2024년 2월 23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