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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49주기…"가진 것 모두 사회에 주고간 유일한 한국인"

독립운동에 참여 애국자...국민건강-기술인재 양성 위해 유한양행 설립
김영길기자 / pharmakr@naver.com
승인 20-03-12 06:54 | 최종수정 20-03-19 13:31  
 

3월 11일은 고 유일한 박사가 1971년 75세의 나이로 영면한 날이다. 49주기.

 

국민기업 유한양행을 창업(1926.6.20)한 고 유일한 박사는 대한민국 재벌-기업인 가운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회에 남기고간 유일한 인물이며, 독립운동가 이기도 하다.

 

유일한 박사는 일찍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 기업경영으로 축

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1904년 당시 나이 9살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유일한은 미국에서 미시간대학을 졸업, 통조림 사업 등으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31세 였던 1926년 귀국, 국민건강 향상과 교육을 통한 기

술입국과 인재양성을 목표로 제약기업 버들표 유한양행을 설립했

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평소의 일념에 따라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체제로 전환했다. 1939년에는 우리나라 기업사상 처음으로 종업원 지주제를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주식공개(1962년), 1969년엔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면서 전문 경영인 에게 사장직을 물려주었다.

 

이는 유한양행이 1969년 이후 5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사원 출신의 전문경영인이 대표를 맏는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또 약 1800명의 유한양행 임직원 가운데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이 같이 고 유일한 박사는 자신이 사망한 후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서도 우리 사회, 아니 국가에 큰 교훈을 주었다.

 

유언장에는 장남 유일선 씨(재미)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고 했다.

 

장남 유일선 씨의 딸이자 자신의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 에게는 학자금으로 1만 달러만 남겼다.

 

딸인 유재라 씨에게는 학생들이 뛰놀 수 있도록 세운 유한중·공업고등학교 일대의 땅 5000평 등을 상속했다. 그리고 "소유주식을 비롯한 모든 재산들은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쓰도록 한다"고 유언, 국민 모두를 숙연케 했다.

 

또 영면 후 오랜세월이 흐른 뒤 CIA의 비밀문서가 공개됐는데, 유일한 박사는 생전 해외에서의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했음이 알려져 더욱 존경받고 있다.

 

딸 유재라 씨도 1991년 세상을 떠나면서, 본인이 갖고 있던 주식 등 200억 원대의 재산 모두를 사회에 기부, 대를 이어 국가와 사회의 귀감이됐다.

 

                     

                                         ▲아버지 유기연씨와 미국유학 떠나기 직전(1904년)의 9살 유일한.